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힐리우스의 등대지기

난하2022 2008. 12. 21. 01:42

 

(사진 출처;www.lliill.egloos.com )

 

 

힐리우스의 등대지기

 

짙은 석양을 먹구름이라도 가린 듯

연신 손사래 치는 엌새들이 재잘대는 힐리우스라는

언덕에, 허리 굽은 안개가 잠시

머물다 갈 무렵에야

내 하루 일과가 등짐을 내리고

집으로 향하는 오후 다섯 시

 

 

날이 궂은 때엔, 먼지 켜켜이 쌓인

삼성판 700원짜리 <폭풍의 언덕> 겉장에

힐끔거리는

히드클리프의 눈초리가

고인이 된 김광석의 <서른 즈음에>처럼,

늘어진 카셋 테잎의

곡조 위에 실렸다

엌새 씨앗처럼 바람에

날린다.

 

까치 한 쌍이

잘 가꾼 테역 위로 날아 와

앉은 힐리우스는

아마도 내 마지막 직장이 될 듯 하고,

잘 못 짜갠 나무젖가락처럼

내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서서

불안한 언덕

힐리우스엔

가끔씩 지나는 철새 무리들만

멀거니 떠나보내는

아고라만 덩그러니 서 있다.

2008. 12. 19.